아름다운 얼굴 (97) 노태강 전 문화관광체육부 제2차관 - ‘나쁜 남자’에서 문체부 차관이 되어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시킨 현대판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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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 (97)
노태강 전 문화관광체육부 제2차관
나쁜 남자’에서 문체부 차관이 되어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시킨 현대판 청백리
작년 12월 문체부 제2차관 직에서 내려와 야인이 된 노태강 전 차관을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파주 동패리의 소담하고 아름다운 주택에서 사는 그는 TV에서 본 것처럼 인상이 참 후덕해 보였다. 그는 편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고, 곧 부인 임혜숙씨가 드립커피를 내왔다. 부인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뜨고, 마당 한편에 마련된 패티오 그늘 밑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미움 사 좌천
노태강(60세). 60년생. 경남 창녕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년 밑의 동생 노태악은 현재 대법관이다. 대구고등학교, 경북대행정학과를 거쳐 83년, 제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최순실(최서원)과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다.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의 체육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전국승마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자 최순실이 이의를 제기했고 승마협회는 최순실파와 반 최순실파로 갈라져 파벌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노태강 체육국장은 있는 그대로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보고서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올렸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태강을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인사 조치를 지시,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좌천됐다. 2016년 교류단장으로 재직 시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리장식전 한국개최 검토를 지시했으나 ‘상업적인 전시’라는 개최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그 사람이 아직까지 있느냐?’고 지적해 공직에서 밀려났다.
▲ 남북 체육분과 회담
문재인대통령이 문체부 차관으로 발탁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그를 문체부 제2차관으로 전격 발탁, 노태강은 화려하게 귀환했다. 그가 다시 복귀하여 그가 가진 능력을 유감없이 대한민국을 위해 쓰게 된 것을 보면 사필귀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명예와 자리가 격상되고, 그를 좌천시키고 해임시켰던 김상률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그리고 비리의 몸통이었던 최순실,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모두 현재 실형을 살고 있다. 그는 진실을 말했고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지만 결국은 의인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 평창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도종환 장관과 상의중인 모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의 주역
그가 해 온 일들은 여러가지 많지만 가장 큰일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체육 분야에 정통한 관료출신으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차질 없이 준비할 적임자”라고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탄핵정국이 막 끝났고, 관계자들이 바뀌어 행정효율이 떨어지던 시기에 그가 총 책임자로 나서게 된 것이다. 팀원들과 현장에서 밤을 세기 일쑤였고, 잘못되면 본인이 책임진다는 각오로 노 차관은 일사천리로 일을 해나갔다.
노로바이러스를 하룻만에 잡아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믿음 통했다.
“식중독균의 하나인 노로 바이러스가 경비 등을 담당하던 보안요원들에게 급속도로 퍼지려는 순간이었어요, 수백 명에 달하는 경비요원들을 격리시키고 대체시키려면 군 병력밖에 답이 없었죠. 그래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보고하여 하루 만에 군 병력의 도움을 받아 노로 바이러스를 잡았습니다”. 노로 바이러스가 확산됐다면 올림픽이 자칫하면 무산 될 뻔했던 위기가 그의 발 빠른 대처로 해소된 것이다. 감염자의 신속한 격리와 조치로 노로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잡은 한국을 두고 IOC는 ‘대한민국의 공적의료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했다. “날씨도 너무 추웠고 혹 눈이라도 많이 올까봐 참 걱정을 많이 했다”고 당시를 떠올린 그는 “개막일에는 날씨도 비교적 포근했고 바람도 불지 않아 드론 쇼를 비롯한 개막식 행사가 잘 마무리된 것은 하늘이 대한민국을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통일농구경기 선수단 북한 순안공항 도착
경북대학교 은사들 영향으로 공직자 길 걸었다.
그는 학창시절 학교 분위기와 선생님들의 영향을 잘 받아 성장한 모범형 인물이다. “당시 대구고등학교 학생들이 존경하던 선배들은 장 차관 등 세속적으로 출세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히말라야에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오른 대구고 2회 산악인 박상렬 선배 같이 모험심 넘치는 인물 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대학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에게 공무원의 꿈을 꾸게 해준 몇 명의 교수들. 정정길 교수(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 역임)는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정책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었고, 40년 넘게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및 석좌교수로 재직했던 김윤상교수로부터는 토지공개념의 혁신적 사상과 특권적, 차별적 사회제도 관행에 대한 비판의식을 배웠다. “당시 김 교수는 천재소리를 듣던 젊은 분이셨어요. 학생들과 어울려 야구, 축구를 즐겨하셨고 격의 없이 저희들과 잘 놀았어요. 라고 회상한 노태강 전 차관은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공복(公僕)으로서 나라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참가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
그는 치밀한 학구파다. 공직생활 20년 만에 찾아온 허무감과 상실감을 그는 독일유학을 통해 극복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도시인 오드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비아드리나 유럽대학(Europa Universitat Viadrina)에서 2007년부터 2011까지 4년 동안 공부하여 문화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가기 전 미리 논문초고를 써놓았고 대학에서 유럽연합과 유럽개별국가간의 정책결정의 역학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국제화 시대에는 한 나라의 정책만 가지고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어렵다.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국과의 정책관계를 살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체육교류에 관심이 많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선수단 참가를 이끌어냈고 당해 7월 평양서 남북통일통일농구대회를 개최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폐쇄적 체육계 조직 개선되어야 할 때
최숙현 선수 자살 사건에 대해 그는 체육전문가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피해 당하는 선수가 불만을 토로하면 매장 당하는 등 조직의 폐쇄적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노 전차관은 “경쟁 일변도로 선수들을 채근하는 성과중심주의의 현 체육풍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화는 사람에게 있다. 선수를 관리하는 코치나 지도자들이 좀 더 넓은 스코프를 가지고 선수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온 현대판 청백리
그는 야인으로 돌아와서도 가톨릭 관동대학에서 스포츠 정책이나 스포츠 관광 등을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골프도 치지 않고 술도 못한다고 밝힌 그는 인터뷰가 끝나서야 담배를 피웠다. 그가 ‘인터뷰를 하느라 담배를 삼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따스한 배려가 느껴졌다.
조선시대 모범관리에게 수여되던 청백리(淸白吏)란 명칭이 그에게 붙여진다 해도 거부감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부인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화단 옆에서 그는 빙긋 웃었다. 행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얼굴이다.
김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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